리뷰[Review]/영화

양들의 침묵 (The Silence of the Lambs, 1991) 리뷰

시북(허지수) 2016. 5. 14. 02:37

 

 200번째 영화 리뷰를 쓰게 되었습니다. 미안하지만 19금 영화이니, 글도 가급적 성인에 맞춰서 쓰겠습니다. 운좋게도 TV에서, 전설의 스릴러 명화 양들의 침묵을 방영해 주었네요. 늦은 밤 가슴을 두근거리며, 흠뻑 영화 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너무 잘 만든 작품입니다. 영화의 두 축은, FBI요원 스탈링 양과, 살인전과가 있는 정신과의사 렉터 박사의 대화가 정말 절묘한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가진 마음의 힘 대해서 알고 싶다면, 그럴 때에도 위안이 되어줄지도 모릅니다.

 

 스릴러 영화에서 위안이라니? 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조울증 어머니를 모시고 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오래도록 방문해야 했습니다. 폐쇄병동도 경험해야 했고, 조현병 환자를 보기도 했습니다. 눈동자가 초점없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 안타까운 환자, 오르가슴을 대신 느낀다는 몹쓸 변태 환자, 환청으로 환시로 고생하는 환자, 어딘가를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하는 강박 환자 등등... 다행히 저의 어머니는 간신히 약물로 일상이 통제되고 있지만 가족들은 힘들 때가 매우 많았습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멋지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렉터 박사 처럼 똑똑하고 잔인한 사람과 대할 때는 거리를 반드시 둬야 한다고, 마음을 조심하라고 말입니다.

 

 철학자의 유명한 말이지요. 괴물과 싸울 때는, 우리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거리 두기를 참 잘 하는 명석한 여주인공 스탈링 양에게 강한 위안을 받았습니다. 주인공의 길! 이 쪽도 질 수 없이, 분발하는 모습 자체가 거대한 위안이었던 겁니다. 멋진 영화 속으로 이제 들어가 볼까요.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렉터 박사는 완전한 사이코패스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살인을 저지를 때 조차, 심장박동수가 올라가지 않았다는 것이 실로 무시무시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익숙함의 경지로 이야기 합니다. 예컨대 처음에는 어느 일들이 힘들지만, 익숙해지면 손쉽게 일들이 진행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몇 가지 알고 있습니다. 한 세 가지 정도를 지금 쓸 수 있겠네요.

 

 첫째, 글쓰기가 그랬습니다. 제가 영화리뷰를 처음 쓸 때는 무슨 말을 쓸 지 정말로 하나도 떠오르지도 않고, 정리도 되지 않아서 냉정과 열정 사이 영화 사진 2-3장을 올려 놓고서는 멍하게 몇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피렌체 3글자 쓰고, 망설이고 그랬던 저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도 많이 영화 리뷰를 쓰다보니, 리뷰 기계(?)처럼, 떠오르는 생각들을 빠르게 늘어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훈련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신 그만큼 집중해서 영화를 보기도 하네요. 집중해서 영화보기, 좋은 취미가 되었습니다. 삶이 힘들지라도, 때때로 한밤에 혼자 영화 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 행복이 되어준다는 것. 이것이 지금은 삶의 기쁜 순간이 되었습니다.

 

 둘째로, 일하는 것과 인간관계, 자기통제가 그렇습니다. 자기관리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는 일하는 것 자체를 힘들어 했습니다.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좋을 지 몰랐고 싫은 소리를 할 줄 몰랐습니다. 비겁했습니다. 자기관리가 엉망일 때 많았고, 시간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엉망인 20대 초반의 풋내기 시절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눈물과 이기심, 위선으로 보낸 20대 보다는, 약간이라도 더 성숙해진 지금 30대를 더 사랑합니다. 일은 자연스러워 졌고, 거절하는 법을 이제 배웠습니다. 자기관리는 아직 어렵지만, 수년전 담배도 끊어버리고,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나이듦의 미학이라 하겠습니다.

 

 세번째, 읽고 있는 책 성취 습관에서는 스탠퍼드 대학까지 자전거로 운동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길가를 자전거로 운동하면서 눈에 보이는 쓰레기가 계속 신경쓰였고, 이것을 치우기로 결심하면서, 나중에는 쓰레기를 한 웅큼씩 모아가면서 운동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엄청나게 훈훈한 모습은 곧 알려지게 되었고, 상을 받는 모범적인 미국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처음에 시도할 때만 해도, 누구나 어떤 일이나 힘들고 괴상하거나, 어려울지 모르나, 익숙해지게 되면,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멋진 일들도 해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약간은 반대로 양들의 침묵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악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선한 영역도 익숙해지면 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본론이자, 하고 싶은 말을 바로 질러도 좋겠지요. 따라서 스탈링 양은 지금 충분히 양들을 구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들과 대면할 줄도 알았고, 그 용기를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지하면서 현장 속에서 물러서지 않는 그 대범함이 눈물나도록 아름답고 멋있습니다. 흉측한 연쇄살인범과 집안에서 총격전을 하는 장면은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끝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데까지 힘내는 여인들의 모습이 이 영화가 주는 강렬한 대목입니다. 힘들게 고아로 컸어도 이처럼 근사해 질 수 있잖아. 너도 할 수 있어. 그 포근한 위안이 좋습니다. 혼자서라도 해나가는 그 꿋꿋함이 영화 내내 근사하게 펼쳐집니다.

 

 한편, 저는 렉터 박사에 대해서 쓰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그는 매우 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영리한 두뇌를 사용해 도주를 시도하는 장면은 가히 스릴러 영화 사상 최고의 몇 분이라 할 수 있을테지요. 악의 화신과도 같고, 사람 사이의 소중한 질서와 생명에 대한 존중이 마치 암흑처럼 꺼져 있습니다. 저는 최근 의학(?)러브 드라마 태양의 후예 같은 작품을 보면서도 의사는 생명에 대한 존중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러므로 사실 렉터 박사는 의사도 아니라고 쓰는 것이 정확합니다. 타인의 마음을 너무나 쉽게 파헤치고 들여다보는 그 잔혹함, 그 엿보려는 마음가짐이 저는 매우 거북스러웠습니다. 렉터는 인간의 한 어두운 욕망을 그대로 체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에서 거리두기라는 메스를 꺼내고 싶습니다. 다시말해, 거리두기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대할 때, 그를 존중하고 얼마간의 거리를 잘 둬야 한다고 말입니다. 설령,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오래된 친구일지라도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하며, 직언을 할 때도 반드시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생각을 해서 이야기 한다고 격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렉터 박사는 실제로 사람을 잡아먹는 살인귀지만, 우리는 어쩌면 악독한 말들로 사람을 잡아먹고 있는 건 아닌지 종종 되물으며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이런 아름다운 말을 합니다. "우리 사랑해 라는 말만 하자요" 그런 타고난 선한 품성이 저는 빛나는 아름다움 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글을 마칩니다. 양들의 침묵은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악과 맞서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포기하지 말아야 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고, 때로는 눈물을 참아가며 다시 일어서서 해야할 일 앞에 서야 한다고, 주연 스탈링과 조연 캐서린양을 통해 배웁니다. 렉터 박사처럼 뛰어난 머리로 상대방을 조롱할 바에 그런 명석함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우리가 선하게 살다가 죽음 앞에 설 수 있기를.

 

 고마워요. 양들의 침묵 같은 멋진 작품이 이 세계에 있어줘서. IMDB 전설의 100위안의 명작. 우리에게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당신도 선한 편에 서주시길, 그래서 함께 세상을 바꿔나가자고요. (이 글은 유시민 선생님의 글쓰기 강의에서 훈련받은대로 지르고, 단문으로 끊어쓴 대목이 많습니다. 글을 잘 쓰지 못했던 저는 글을 더 잘 쓰고 싶어서, 몇 가지 팁들을 따라하고 있음을 밝혀둡니다. 여러분도 무엇이든 마음 먹은 바를 해낼 힘이 있다는 것, 우리 잊지 맙시다.) 멋진 FBI 특수요원이 된 스탈링양에게 축하를 보내며. / 리뷰어 시북. 2016. 0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