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매트릭스 2 - 리로디드 (The Matrix Reloaded, 2003) 리뷰

시북(허지수) 2016. 9. 25. 00:51

 

 매트릭스 2편은 딱 중간에 있는 작품입니다. 1편에 비해서는 확실히 액션의 증가, 스케일의 증가가 눈에 띕니다. 그런데 영화는 도중에서 딱 끊어지면서, 3편을 꼭 보게끔 관객을 이끕니다. 그래서 2편을 보면서는 여러가지 의문점을 가질 수 있겠습니다. 가령, 왜 네오만 특별한 존재로 대우받으며, 하늘까지 날아다닐 수 있는 것인지, 또는 스미스 요원은 마음껏 자기복제가 가능한 것인지, 매트릭스 2 리로디드는 화려한 액션으로 우리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묻고 있는 듯 합니다. 결국 숙명처럼 우리는 누군가를 믿거나, 무엇인가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프로그래밍된 세계가 등장합니다. 예언자 오라클 아주머니를 만나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사탕을 건네주자,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심리학의 여러 장면들 같았습니다. 사람은 완전한 존재가 실은 아닙니다. 유명한 농구 코트의 고릴라 가면 실험이 있습니다. 농구 경기에 집중하고 있으면, 고릴라 가면을 쓰고 있는 존재가 지나가더라도 전혀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나 홀로 신의 경지에 다다를 수가 없다고 생각입니다. 함께 하는 이가 그래서 중요하지요.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컴퓨터에 의해서 만들어 놓은 세계에 너무 빠지지 말라는 경고로도 읽혔습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생각, 계속되는 생각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들었습니다. 스미스 요원은 컴퓨터의 유명한 자기 복제 기능 같았습니다. 똑같은 존재를 계속해서 만들어 냅니다. 가령 사람은 60억 명이 있다면, 60억 개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사람은 저마다 아주 특별하지요. 저는 MBTI같은 적성 검사를 참 재밌게 생각했는데, 그것도 하나의 가능성일 뿐, 16개가 아닌 얼마든지, 64 종류 이상의 인간 가능성과 경향성을 얼마든지 그려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스미스 요원은 하나 뿐이에요. 스타일도 선글라스도 에잇 뭐야 저게!

 

 즉, 그에 비해서 컴퓨터는 몇 개의 프로그램 만으로도 60억 개 컴퓨터에 깔 수 있습니다. 익스플로러, 구글 크롬 등 접속체제도 따지고 보면 몇 개 되지 않습니다. 아주 최악의 경우, 인기 있는 사이트가 랜섬웨어 유포지의 표적이 되어버린다면, 순식간에 악몽같은 증식이 일어나고 말테지요. 하도 무서운 사이버 세상이 되어버렸기에, 보안 프로그램을 꼭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접속이 늦어지더라도, 어베스트에, V3에, 알약에... 휴, 그제야 안심이 좀 됩니다.

 

 이런 매트릭스 세상에서도, 인간은 기계를 이용해서 거대한 세계 시온을 여전히 활용하고 있다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었습니다. 기계가 사실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이루어진 것들임을 재차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날도 기계가 없으면 일상이 곧바로 매우 큰 불편을 겪을 것입니다. 냉수에 샤워를 하고, 일터까지 걸어야 하고, 세탁시간은 얼마나 또 고될 것이며... 날씨와 계절에도 일상의 모습이 크게 영향을 받겠지요. 그런 고마운 기계들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자동화된 기계들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인간을 지배하고 에너지원으로 삼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는 이것들이 기계가 벌이는 한 판의 인형놀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트릭스 전반의 메시지일 테지요. "우리들은 보기에는 자유롭게 살아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자각하지 않았을 뿐, 생각이 사회에서 교묘하게 조작되고 있는 셈이라는 것." 저도 그런 생각이 간혹 듭니다. 저기 저 적극적이고 자극적인 댓글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왜 그토록 사이트마다 사람들은 다른 가면일까. 왜 희망 대신에 다들 분노만을 쓰고 있는걸까. 등등...

 

 자, 영화의 하이라이트. 커다란 빌딩에 네오가 잠입에 성공해서, 홀로 새하얀 절대자의 방에 들어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여기서 네오는 진실을 마주하고, 선택지 앞에 서게 되지요. 시온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애인 트리니티를 구할 것인가. 망설이지도 않는 네오의 모습을 보면서, 도덕이 아니라 한 사람이 가지는 귀중한 세계를 목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격언처럼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한 세계를 구한 것이라는 것. 적절한 계산으로 세계를 다시 한 번, 아마도 여섯 번째로 리프로그래밍 하려는 컴퓨터에 맞서서 네오는 웃기지 마라는 이야기를 확실히 먹여주는 것입니다. 인간이 오늘을 사는 힘이란 참 신성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그렇게 하늘을 슈퍼맨처럼 굉장한 속도로 날아서 트리니티를 구해내고, 목숨을 깨워주는 모습에서, 사람은 함께 운명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갈 때, 참 아름답고 예쁘다는 생각을 또한 하게 됩니다. 총알을 한 방 맞아서 목숨이 끊긴 것 같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로 기적적으로 회복해 내는 사람의 존재, 기계와는 메커니즘 자체가 아예 다르다고 쓸 수 있을 것입니다.

 

 1호, 2호, 16호, 18호, 기계는 서로 간 의사소통을 숫자로 할 것이며, 죽음이 있더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느끼며,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발견하게 되면, 즉각 바이러스처럼 접근하며, 변이를 일으키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딱, 스미스 요원의 수법이네요. 오로지, 증식하며, 자신을 파멸하려는 존재를 없애려고 시도하는 모습이었어요. 이제 결론적으로, 저는 이 영화를 통해 기계의 분노와 사람의 애정 간의 대립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이기는 것이 사람이기를 당연히 응원했지요.

 

 사람은 온전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극중의 네오처럼 무적의 존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애정이 있기에, 사랑하는 것이 있기에 우리네 삶은 기계가 느끼지 못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면서 행복한 하루를 그려나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맨날 똑같은 영화만 보면 무슨 재미겠어요? 매번 상상력 가득한 일상을 꿈꾸고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우리의 하루. 그런 날들을 해낼 수 있다면 정말이지 최고일 테죠.

 

 마음 껏 보고 싶은 것들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고, 열심히 살아가기. 네오처럼 우리는 그 삶 속에 사랑하는 마음이 들어와 있기를 응원해 봤습니다. 고속도로 같은 빠른 세계가 아닌, 오늘을 천천히 한 걸음씩 멋지게 살아내기를. / 2016. 09. 25.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