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만화·애니

#3 턴에이 건담 (1999) 리뷰

시북(허지수) 2020. 9. 1. 03:03

 

 만화 보는 것을 취미로 삼아야겠다. 마음 먹고 6개월의 시간 동안, 여유 있을 때 한 편씩 감상해 보았습니다. 화이트 돌이라고 불리는 최강의 로봇 턴에이 건담의 활약이 담겨 있지만, 사실은 각 캐릭터들의 단호한 모습이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특히 주인공 로랑은 달의 주민 (문레이스) 이면서, 지구인들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태도가 인상 깊습니다. 평화가 좋다는 거지요.

 

 달을 통치하는 여왕 디아나 역시 평화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로, 지구에서 조심스러운 행보를 이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달의 강경파들에게 미움 받기도 합니다. 턴에이에서 느꼈던 첫 번째 수확은, 모두에게 사랑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 입니다. 특히, 평화를 이야기 한다면, 그 이상 선을 넘어선 안 된다고 이야기 한다면, 답답하다는 주변의 괴로운 소리를 마주해야 했습니다.

 

 디아나가 성장하는 지도자, 타인을 헤아리는 지도자의 아이콘이라면, 과연 저는 어땠을까... 동호회 18년을 되짚어 보니, 많은 사람들에게 (고생 시키는) 죄를 지었고, (여러 사정으로 제대로 이끌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한 적이라도 있었는지... 착잡했습니다. 디아나는 자신의 책임에서 도망치지 않았다는 면을 바라볼 때, 정작 저는 소명 (*이를테면, 남을 위해 일정 시간을 온전히 바치는 삶) 앞에서 벌써 반년 가까이 단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인생에서 자신의 왕관 (책임) 을 쓰고 살아가는 태도는 결코 가볍지 않구나를 느낍니다. 부모가 되면 책임의 의미를 깨닫기에 인생이 달리 보인다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두 번째 수확,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남을 짓밟으며 뜻을 이루는 쉬운 선택은, 결국 분열과 증오, 혹은 복수와 폭력으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평화의 길을 한사코 걷는 디아나와 그 뜻을 공유하는 키엘양은 선언합니다. 우리 문레이스는 지구인들과 함께 잘 살기 위해서 노력하겠으며, 무력제압의 길을 걷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더라도 키엘양과 소시에양의 부모님은 크나큰 피해를 입고 맙니다. 디아나는 진심을 담아 눈물로 사죄합니다. 그리고 각성해서, 문레이스의 강경파와 끝까지 싸워나갑니다. 모두가 내 뜻대로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만화는 마지막까지 그러한 모습이 빠짐 없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올해 읽었던 서적 중에는 링컨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매일 시간을 내어 다른 사람들 (그 중에서도 일반 사람들까지) 의 이야기를 듣곤 했다고 합니다. 링컨이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고, 오히려 우울증 또는 조울증으로 고생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역사 연구자들은 이야기 합니다. 정신의학에서 우울이라는 독특한 감정은, 때로 다른 사람을 깊이 이해하게 만들 수 있다는 흥미로운 시선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울은 현실을 냉정하게 보는 이점이 있으니까요. 타인의 고통을 결코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 링컨을 위대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그 점은 디아나 역시 닮은 구석이 있었네요. 디아나는 최종화에 가서야 편안히 잠이 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울컥하는 명장면입니다. 죽음의 위협, 내부의 반란... 그럼에도 굽히지 않고 계속 되는 사과와 설득! 여왕은 뜻을 이루어 나가기가 너무나 힘들었지만, 결국 종착역에 와서야 쓰러지듯 해내고 말았습니다. 기술을 앞세우지 않고, 너와 내가 손잡는 천국 같은 그림을 현실에서 이루고자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역시 과학 기술이 나라마다 서로 다릅니다. 게다가 인간의 발전 속도는 지금까지 놀랍도록 향상되었고, 지혜로움도 얼핏 더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마다 초소형 고성능 퍼스널 컴퓨터를 들고 다닙니다. 수명은 100년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이런 과학 발달 시대에서 자기중심의 지향이 커질까를 우려합니다. 똑똑해질수록, (또는 힘을 얻을수록) 타인이 보이지 않게 되는 역설이 있음을 턴에이 건담의 구엔 지도자를 통해 비유적으로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수백명, 또는 수천명과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면, (누구나 리더가 되는 시대라면) 인간은 더욱 타락할 수 있구나를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으로 접근하면, 마지막까지도 만화가 편치 않았습니다. 내가 온화하고 따뜻한 디아나 같지 않고, 힘에 취해버리는 구엔 같았구나의 쓰라림. 그리하여, 오히려 삶이 무섭게 느껴져서 마비되는 충격이 오던 굉장히 이상한 작품이 턴에이 건담이었습니다.

 

 높은 자리일 수록, 수백 명이 오고가는 SNS 일수록, 조심해야 함을 느낍니다. 의사의 길을 걸었던 동호회 전직 운영위원 FA님은 매우 일찍이 이러한 혜안을 꿰뚫어 보았기에, 댓글 하나에도 경계하고 조심하던 추억이, 세월을 한참 넘어 저를 가르칩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네트워크 생활을 해야할지 더욱 막막하긴 합니다.

 

 그렇다면, 감히 주연의 자리에 앉아 있는 친구들인, 로랑이나 디아나, 그리고 소시에나 키엘, 하리 등에게서 무리하게 답을 찾지 않겠습니다. 그들은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현실에 뛰어들어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턴에이 건담에는 빵 굽는 조연 청년 한 명이 나옵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비록 총검 같은 무기를 들지 않더라도)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구나. 그것이 빵 굽기라면, 거기에도 무엇보다 가치 있는 싸움의 방식이 될 수 있구나 라는 대목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블로그로 490만... 동호회 카페로도 90만... (네이버까지 더하면 120만) 인터넷 세계에서의 수십, 수백만 명의 교류, 그 풍요로운 18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가를 되짚어 봅니다. 치매 간병이라는 끝모를 인생 절망의 시간이 계속되었고, 눈물의 순간들 속에서도 절대로 무너지면 안 된다고, 고통은 반드시 지나간다고 이야기 해주시던 은인들. 저야말로, 히키코모리 같은 이기적 인생이었음에도, 은인들은 끝까지 위로를 해주셨습니다.

 

 상징적인 의미로, 저는 훗날 빵을 굽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빵사가 된다는 말은 아니고요! 비유적으로)

 좋은 자리는 넘겨주더라도, 세상을 이끄는 이름난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소시민으로 힘껏 살아가면서도, 누군가에게 든든한 하루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조지 워싱턴 같은, 위대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선한 방향으로 열정을 되찾는다면,

 평생의 꿈인, 카카오 블로그 천만 방문, 다음 카페 백만 방문의 자랑하고 싶은 성취는 자연스레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신에게 몰두해 갔던 과거의 한심함을 벗어버리고, 메타노이아 다시 말해 마음의 방향이 변하는 기적을 체험하고 싶습니다.

 

 그 날을 간절히 바란다면, 마침내 그 모습을 조금은 닮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힘을 다해 견뎌나간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매우 조심스럽지만,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삶은 갈수록 힘이 들고, 이제는 버겁게까지 느껴지지만...

 맛있는 식사 한 끼에도 감사하며, 좋은 사람 한 명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고통 속에서도 나의 세계를 풍요롭게 물들이는 겸손하고 단호한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월광접이 세계를 파멸시킬 수 있지만, 턴X를 막아내는 구원도 될 수 있었듯이.

 

 고통스러운 현실이, 원망과 불평으로 내면을 황폐하게 몰고가지 않고,

 속좁고, 하찮은 인생에게, 이토록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게 해주셨구나를 감사하는, 축복에 눈뜨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길었던 리뷰를 마칩니다.

 

 - 2020년 4월 ~ 9월. 완주 감상문. 시북 (허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