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168

삼국시대의 종언 -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

7세기 백제 의자왕부터 출발해 봅니다. 삼천궁녀 설화로 알려져 있는 욕먹는 의자왕은 실제로는 그렇게 막돼먹은 군주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초기에는 사려깊고 총명한 인물에 가까웠지요. 신라의 배신으로 성왕이 전사한 것을 기억하며, 백제는 힘을 모으자마자, 바로 신라에게 칼끝을 겨누며, 무섭게 맹공을 펼칩니다. 의자왕 은 옛 가야지역의 최대거점 대야성을 빼앗는데, 당시 대야성에 있던 신라의 유력자 김춘추 일가의 사위와 딸이 사망합니다. 김춘추는 딸도 죽고, 사위도 죽고 참 불행했었지요. 백제가 매섭게 몰아붙이자, 신라는 급한 상황이 됩니다. 신라가 급할 때 찾아가게 되는 그 곳, 추억의 고구려가 있었지요. 몇 세기전 왜구를 몰아내며 우리를 도와준 고구려, 이번에도 도와주지 않겠니~? 신라의 사신으로 파견된 ..

신라의 발전과 중흥 - 늦바람은 강하고 무서운 법

삼국시대에서 신라는 발전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편이었습니다. 초창기의 신라는 중앙 집권 국가라고 보기 힘들며, 지배층도 박,석,김 3성씨가 교대로 왕위를 계승하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자기들만의 리그에서 놀고 있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다가 4세기에 들어와, 오랜 세월 집권하게 되는 내물왕 때 와서야, 본격적인 중앙집권국가의 틀을 마련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내물왕은 지배자의 칭호를 이사금에서 마립간(대족장이라는 뜻)으로 바꾸었고, 마침내 김씨가 왕위를 세습하도록 하는 등 어느 정도 국가로서의 자리를 잡아나갑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신라가 자발적으로 정했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국가는 좋든 싫든, 외부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되어있습니다. 신라는 4세기 말에 왜구의 침입으로 심하게 고생했고, 수도가 ..

백제의 전성기와 추락, 근초고왕과 성왕 이야기

역사를 생각해 볼 때는, 언제나 연결고리를 염두해 두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무슨 영향을 받았는가? 당시 분위기는 어떠했는가? 라는 배경을 좀 더 생각해 본다면, 사람들의 행동을 보다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 백제를 살펴보기에 앞서, 살짝 부여에 대해서 언급하면 좋겠네요. 고구려는 부여에서 온 고주몽에 의해서 세워졌습니다. 옥저 역시 부여족의 갈래라 할 수 있겠지요. 자, 그렇다면 백제는? 백제는 고구려 계통의 세력이 밑으로 내려와서 세운 나라입니다. 즉 간이화살표를 만든다면 부여 → 고구려 → 백제 이렇게 연결고리가 있는 셈이지요. 백제는 훗날 남부여로 불리기도 합니다. 나름대로 부여의 피와 자부심이 흐른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부여는 5세기까지 존재했는데, ..

고구려의 전성기 - 광개토대왕, 장수왕의 왕성한 활동

지난 이야기에 이어서, 고구려는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안 그래도 중국의 전연 에서 공격이 들어오고 있는데, 밑에서는 백제 근초고왕이 계속해서 밀고 올라옵니다. 결국 371년 평양성에서 고구려의 고국원왕은 전사하는 참사를 겪어야 했습니다. 근초고왕은 이토록 강력했던 것입니다. 고구려는 지금 우왕좌왕에 멘붕상태에, 완전히 무너져 내린 상황입니다. 그 때, 고구려 역사의 위대한 군주로도 손꼽히는 "소수림왕"이 등장합니다. 무서울 정도로 현실적이라서, 그가 고구려를 다시 일으킨 과정을 보면 감탄마저 들 정도 입니다. 이 상황에서, 섣불리 백제와 맞붙다가는 아예 고구려가 없어질 수도 있었겠지요. 소수림왕은 국력을 다시 모으는데 온힘을 쏟습니다. 착실히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쌓으면, 반드시 복수의 날은 ..

고대 국가의 성격, 고구려의 초기와 미천왕

이제 본격적으로 삼국시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왕 이름들이 나올테고, 여러가지 제도가 등장할 테고, 한국사가 "벽"으로 느껴질 수 있는, 첫 위기(?)이기도 합니다. 우선 고대 국가의 성격 및 고구려와 가야의 발전에 대해서 살펴볼텐데, 일단 배경지식으로 고대국가의 성격에 대해서 세심하게 생각해 보고 간다면, 한결 삼국시대를 이해하는데 큰 힌트가 될 수 있습니다. 연맹왕국과 달리, 고대국가로 들어오게 되면, 가장 먼저 왕권이 강화되고, 1인 지배 체제가 된다는 것을 손꼽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연맹 왕국은 자치를 하고, 각각 신념이 따로 있었다면, 고대 국가로 들어오면 중앙 집권 국가 가 되어서, 위에서부터 질서와 법, 종교 등이 뚜렷하게 제시되는 셈입니다. 이제부터 좀 재밌게 써야 할텐데... 하하...

국가의 형성 - 초기 나라들의 결혼 이야기

이제 본격적으로 한민족의 초기 고대국가를 하나씩 천천히 살펴봅시다. 부여, 고구려, 옥저와 동예, 삼한이 되겠네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처처럼 나라들이 아주 많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 솔직히 과거에는 온갖 암기법으로 외웠던 가슴아픈 기억이 많지만, 가급적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접근한다면 좋을 듯 합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제도를 만들었는가? 당시 시대의 최선은 무엇이었는가? 왜? 왜? 왜? 이것이 제 나름의 공부를 즐기는 방법이랄까요. 여하튼, 부여부터. 부여는 일단 5부족 연맹 형태의 연맹왕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절대권력을 가진 왕이 있는게 아니라, 네 방향의 지역을 다스리는 사출도 와 중앙지역의 왕이 합해서 국가를 이루었습니다. 왕이 힘이 없다보니,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왕에게 책임을 덮..

청동기, 철기 - 계급사회의 출현 및 고조선과 중국교류

성장과 분배는 같이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좋은 역사적 배경으로는 청동기가 있겠지요. 청동기는 보다 높은 기술이 필요한 벼농사를 통해서, 생산력이 증가하고, 마침내 잉여생산물까지 등장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파이가 커진 셈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파이는 커졌어도, 모두가 부자가 된 것이 전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하고, 그 파이의 몫은 소수의 사람들이 독점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장이 아무리 지속되고, 발전이 계속 된다고 하더라도, 분배에 대한 강력한 의지 없이는, 결국 일부만 행복할 뿐이다 라는 사실. 청동기 시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재밌는 교훈이지요. 그럼 BC20~15세기 정도로 추정되는 청동기 시대의 청동은 많았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청동은 쉽게 말하면 레어템..

구석기, 신석기 - 먹고 사는 것과 환경의 중요성

앞으로 약 50개 남짓한 문서로 정리될 이 자료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한 것입니다. 그 외에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참, 요즘은 한국사가 각종 시험의 단골 손님이기도 하고요) 나이가 들면, 역사 만큼 재밌는 공부도 드물지요.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가급적 누구나 읽기 편하도록 정리해 보는 편인데,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배운다는 것은 원래는 대단히 즐겁고 유쾌한 경험일테니까요. 선사 시대의 생활을 생각해 본다면,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