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168

조선의 주도세력 탐구, 관학파 vs 사학파

한국사 이야기도 어느새 반환점을 넘어가고 있네요. 대망(?)의 조선시대로 들어왔습니다. 공기가 조금 고려와 다른 것 같나요? 하하, 조선시대는 임진왜란(1592)를 기준으로 조선 전기와 조선 후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당연히 조선 전기부터 꼼꼼하게 살펴봐야 겠지요. 조선 전기의 주도 세력은 누가 있었을까요? 15세기는 관학파(=훈구파)가 있고요, 16세기는 사학파(=사림파)가 주도 를 해나갑니다. 따라서 이번 문서에서는 집중적으로 15세기 관학파와 16세기 사학파를 정리해 봅시다. 익숙해질 때까지 살펴보고, 생각해보는 게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조선은 어떻게 건국될까요? 고려말 친원파 권문세족을 떠올려봅시다. 세습되는 음서제와 엄청난 대농장을 소유하던 썩은 지배층들 말이에요. 그리고, 권..

중세문화사 4 - 고려의 석탑과 공예

고려의 마지막 문서를 멋있게 끝내면 좋겠지만, 사실 뭐 대단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고, 각종 석탑, 불상, 자기 등을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후다닥 정리하면, 석탑에는 고려 전기에 월정사 8각 9층 석탑이 있습니다. 고려시대 대표적인 석탑인데 약 15미터 높이에, 상단 부분에 종이 달려 있는게 화려하고 인상적인 위용을 보여줍니다. 강원 평창에 가면 볼 수 있고요. 고려 후기에는 경천사 10층 석탑 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원나라와 라마교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크기도 엄청나고, 예전에 볼 수 없던 모양의 탑이기 때문에, 시험에도 종종 등장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석탑외에도 승탑이 유행했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왜냐하면이 중요합니다! 고려 건국 세력은 누구였나요. 호족들과 육두품..

중세문화사 3 - 고려의 과학과 건축

문화, 그 중에서 특히 예술문화는 아름다움이나 정성, 은은한 감성 같은 단어와 어울리는 듯 합니다. 이번 문서에서는 고려의 과학 기술과 건축 양식을 살펴보도록 합니다. 사진도 살짝 올려봤는데, 천천히 5분간 응시하면서, 느낌 속으로 빠져들어가보면 좋겠지요. 억지로 외울 필요가 뭐 있습니까, 문화는 감수성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고려시대의 분위기에서 출발해 봅니다. 국가에서 미는 것은 역시 유학이 장려되었습니다. 전에도 살펴봤지만, 관학에서는 신분이 낮으면 유학을 배우지도 못했을 정도였고, 수도 개경에는 사립학교 유학공부가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나머지 학문들은 듣보잡... 아, 조금 심한가요. 여하튼 "잡학"으로 처리할만큼, 유학이 학문의 최고가치로 인정받았지요. 그럼에도 몇 가지 꼭 필요한 학문들이..

중세문화사 2 - 고려의 불교 사상, 의천과 지눌

문화는 그 시대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르게 말해, 문화는 그 시대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어떤 특정한 모습들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문벌 귀족은 불교 교종을 선호하고, 무신 정권은 불교 선종을 선호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보수적이고 안정화된 사회에서는 글과 학문 (교종) 이 장려되지만, 혼란기나 갈등기가 되고 누구나 왕(=혹은 부처)이 될 수 있게 된다면, 그런 분위기 속에서는 깨달음과 수행이 장려됩니다. 문화사를 접근할 때는, 방대한 양을 괴롭게 암기하기보다는, 왜 그랬을까? 라고 한 번만 더 생각해보는 연습이 중요할 수 있습니다. 오늘 문서로 어서 출발해 봅니다. 고려의 불교라면 그 출발이 괜찮았습니다. 태조 왕건은 훈요10조를 통해서, 연등회, 팔관회 같은 행사..

중세문화사 1 - 고려의 유학과 역사서

고려의 유학을 살펴본다고 하면, 어쩐지 조금 어색한 느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조선의 유학이라면 딱 하고 성리학이 떠오를테지만, 고려의 유학이란 대체 뭔가요? 조선시대 철학적인 성리학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고려 초기에는 훈고학의 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경전의 자구 해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뜻이지요. 유학과 가장 관련이 깊은 왕을 꼽으라면 고려 초기 성종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종하면 떠오르는 유학자가 있는데, 바로 시무 28조를 건의한 최승로 입니다. 유학자 최승로의 제안은 성종에게 받아들여졌는데, 이 지점이 시험 단골 코스니까 몇 번이고 잘 파악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신라 때, 최치원이 올린 제안은 거부당했다는 것도 같이 체크) 한편 최승로 때까지만 해도, 불교를 비판적으로 보긴 했어..

만적의 난 - 해방이란 무엇인가, 이상주의는 가능한가?

이번 문서는 금방 넘어갈 수 있는 짧은 내용이지만, 한 번쯤 생각해 본다면 좋겠다 싶어서 고려 후기까지의 각종 난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마련입니다. 성공하면 쿠테타나 혁명이 될 수 있지만, 실패하면 가차없이 "난"이 되고, "역적"이 됩니다. 만적의 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노비 해방운동을 펼친 선구적인 혁명가로도 만적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요? 혁명가 체 게바라의 말처럼,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지니고, 그것을 실천해 나갈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어쨌든 하나씩 살펴봅시다. 고대의 난부터 정리해 본다면, 귀족 김흠돌의 난이 있습니다. 신라 중대, 왕권 절정기에 일어난 난이었는데, 김흠돌 세력은 신문왕에 의해서 제압되면서, 오히려 이후 대드는 진골 귀족들을 숙청해버리며,..

고려의 생활 모습 - 여성 평등이란 무엇인가?

아 제목 장난 아니지요. 조금 자극적인가요. 드디어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살짝 기쁘고, 들떠 있습니다. 우선 고려의 생활 모습을 천천히 살펴봅시다. 여성 평등에 대해서는 문서 중반부터 집중 조명해 보겠습니다. 고려시대에도 역시 농민들이 중요하잖아요. 농사 짓고, 각종 조세, 공납, 역에 시달리고, 바쁘고, 힘들고, 정신 없고... 그런 농민들에게도 결혼이나, 장례, 마을 제사 등 다양한 생활 모습은 있었겠지요? 그것을 살펴보자는 겁니다. 농민들에게는 "향도"라는 공동체 조직 이 있었습니다. 향리와 농민, 다시 말해 관료와 일반 백성이 모두 참여하게 되는 조직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했습니다. 향도의 출발은 불교 신앙 활동을 위한 모임이었는데요. 이들은 모여서 미륵에게 구원받고자 하는 활동 [매향]을 하..

고려의 신분제도 - 양극단의 인생 모습

이번 문서에서는 고려의 신분제를 살펴봅시다. 사회상을 보자면, 고려에는 법적으로 신분제가 있었는데요. 크게 네 가지 분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귀족, 중류층, 양민, 천민 입니다. 지겨울 만큼, 복습하고 있는데, 귀족이 잘 사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음서제가 있고요~ 경제적으로는 공음전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폐쇄적 통혼을 통해서 자신들끼리 소수의 좋은 세상을 유지합니다. 당연히 권력이 편중될 수록, 부패도 반드시 발생하고, 모순이 자꾸 터지며, 끝내 문벌 귀족이 칼 맞고 무너진다는 것은 분명하지요. 편중에 반대하는 집단이 뭉치면, 잘못된 관행들은 깨지기 마련입니다. 역사는 늘 그렇듯이 지나친 탐욕에 대하여, 봐주는 법이 없습니다. 역사를 생각할 때면, 기득권은 폐쇄적으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을 겸허하게..

고려의 경제 생활 - 소를 이용해 다들 농사를!

입에 착착 감기는 유행어, "소는 누가 키우니~" 농사하면 역시 소입니까? 물론 처음부터 이러한 우경이 발달한 것은 아닙니다. 우경은 고대로부터 있어왔지만, 일반화 되어서 다들 소를 이용해서 농사를 지은 것이 고려 시대 였지요. 이것을 우경의 일반화 라고 하는데, 어쨌든 이번 문서에서는 각종 경제적인 생활 모습들을 살펴봅니다. 빠르고, 쉽고, 편안하게, 중요한 것만 쏙쏙 이해해보면 좋을 듯 합니다. 상식적으로 느껴본다면 더욱 간단할 것입니다. 이름만 살짝 다르지, 지금도 있는 것들이 많을테니까요. 우선 수취제도는 기본적으로 뭐 같습니다. 조세 - 공납 - 역 이렇게 있습니다. 조세는 1/10세를 기본으로 하고 있고, 주현에서 걷은 다음에, 조창을 거쳐서, 조운로를 통해서 경창으로 옵니다. 세금은 다 정부..

고려의 토지제도 고찰 - 전시과의 한계와 변화

정치와 경제(및 토지)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고려시대 복습의 느낌도 납니다만, 하나 하나 그 시대의 분위기를 살펴본다는 느낌으로 접근해 보면 좋겠습니다. 고려시대의 토지제도를 큰 흐름으로 본다면, 전시과 시행 - 대농장 등장 - 과전법 시행 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농장은 권문세족이 누렸던 호화로운 깽판이니까 -_-;;; 사실상 중요하게 배워야 할 부분은 전시과라 할 수 있습니다. 전근대, 사람들이 국가에 열심히 일하면 근무대가로 얻게 되는 것은 수조권 이었습니다. 수조권은 토지의 생산량 중 일부를 받는 것인데, 주로 직급에 따라 받게 되었습니다. 쉽게 생각한다면, 각 호봉에 따라서 수조권의 규모가 정해져 있었다고 보면 됩니다. 아직까지는 화폐경제가 아니라, 사회가 농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