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168

조선의 토지제도 변화 - 수조권의 소멸, 녹봉의 전면실시.

아~ 왔습니다. 토지제도를 보는 시간.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즐길 수 없기에 피하고만 싶은 토지파트여! 그래도 천천히 조선의 토지제도 변화를 살펴봅시다. 쉽다고 계속 생각하면서, 접근한다면 그나마 조금 쉽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서론부터 바람잡는 중;;;) 어쨌든 고려 말 50만결의 경지 면적이, 조선 시대로 와서 15세기 중반에는 160만결까지 커질만큼, 조선은 농업을 중시하던 사회였지요. 중농억상의 조선이었습니다. 조선의 성리학적 경제관의 특징부터 살펴봅시다. 키워드는 "검약" 입니다. 다른 말로, 절약이며 절제 입니다. 사치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거지요. 고려시대가 보여주는 화려함과는 상당히 지향하는 바가 다릅니다. 결과물로 예를 들자면, 고려 청자는 럭셔리하고 샤방샤..

싸울 것인가, 화합할 것인가 - 병자호란과 굴욕

명분론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조선은 사대외교를 기본 으로 걷습니다. 성리학적 질서를 중시했기에, 큰 것을 섬겨야 한다는 거지요.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도움 요청으로, 실제로 명나라가 조선을 돕기 위해서 군대를 이끌고 힘을 쏟아준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역사는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점이지요.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지! 라는 논리 앞에 서게 되는데요. 문제는 여진이 나날이 커져서, 이제 명을 위협하기 시작하니까, 조선의 입장이 난처해지기 시작합니다. 안그래도 오랜 전쟁으로 인구도 격감하고, 농촌도 황폐하고, 국가 재정도 어렵고, 힘든 시기였는데... 오늘의 문서 역시도 상당히 가슴 아픈 시간들입니다. 여진은 누르하치가 통일을 이루며, 17세기 초반 후금..

가슴 설레는 그 이름 이순신 - 싸움의 태도

이번 문서에서는 싸우는 사람들을 살펴볼 텐데요. 일반적으로 평화라고 하면 좋은 것, 싸움 이라고 하면 나쁜 것으로 인식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세상사가 반드시 이분법으로만 돌아가는 건 아닙니다.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싸울 줄 알아야 하고, 나쁜 놈이 되더라도 할 말을 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가슴 저미는 진심을 몰라주고, 주류에서 추방될 때도 있겠지요. 때로는 격렬한 비난을 받으며, 때로는 모욕적인 말들을 들으면서, 괴로움에 잠을 이루지 못할지도 모르겠으나, 저는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인생을 인생답게 살아가는 사람" 이라고 찬사하고 싶습니다. 왜란에 맞서 싸운 사람들을 살펴봅시다. 함경도 길주에서는 정문부가 왜와 맞서 싸우며 값진 승리 (북관대첩) 를 거둡니다. 그리고 전승기념비를 세웁니다. ..

임진왜란, 그 잔인한 현실 속으로...

어떤 잘 사는 집단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로얄 패밀리 였고요. 호화로운 집을 거닐면서 생활을 즐기던 집단 입니다. 이들은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너희들을 잘 보살펴 줄테니, 우리를 잘 섬기고, 말을 잘 듣도록 해." 그리고, 마침내 위기가 발생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죽음의 위기를 마주하게 되는 잔인한 시간이 왔습니다. 재빠른 로얄 패밀리들은 나부터 일단 살아야지 하면서, 짐을 싸고, 제 갈 길을 떠납니다. 오늘은 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러니까 한 명의 이름 없는 백성 입장이 되어서 임진왜란의 장면을 눈물로 들여다볼까 합니다. 지배층들의 위선이 폭로되는 불편한 진실 앞에서, 겸허한 태도로 천천히 본편으로 떠나봅시다. 임진왜란은 일본이 말도 안 되는 명분을 주장하면서 시작됩니다. 도요토미가 정..

조선전기의 대외관계 - 사대 교린 정책

조선은 1392년 건국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1592년까지 무려 200년 동안이나 전쟁이 없었습니다. 조금 신기한 대목이기도 한데, 나름대로 외교 정책을 밀고 있던게 있습니다. "사대교린" 입니다. 큰 것을 섬기고, 이웃과는 교류한다는 겁니다. 즉 명나라를 섬기고, 여진과 일본과는 교류를 해나가는 정책입니다. 물론 조선 초기에는 정도전이 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요동정벌을 주장하기도 했으나, 어쨌든 조선은 기본적으로 사대교린 외교로 밀고갑니다. 오늘날 관점으로 보면 명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대"라는 말 때문에, 어감은 상당히 좋지 못하지만, 냉정하게 보자면 자주적인 실리외교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얻을 건 확실히 얻어가겠다는 계산이 깔려있지요. 또한 공무역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주면, ..

사화 이야기 두 번째, 개혁가의 최후.

지난 문서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중종반정이 일어나며 연산군은 폐위되었고, 그러면서 중종이 사림들을 등용하기 시작합니다. 훈구세력이 가진 힘이 자꾸만 강해지자, 일종의 견제하는 세력이 필요했던 거지요. 새로운 사림세력들과 함께 왕권강화도 할 수 있고, 훈구파도 견제할 수 있으니, 중종의 선택권은 당연했습니다. 반정을 함께한 공신들 틈에서 어느 정도 독립해보고 싶었겠지요. 자, 그런데 중종이 바로 조광조라는 인물을 등용하고 가까이 하면서, 이른바 조선시대판 기득권전쟁이 펼쳐집니다. 보수의 놀라운 저력을 감상할 수 있을지도요. 하하. 사림 출신의 굉장한 개혁가 조광조! (김육, 흥선대원군과 함께) 조선 3대 개혁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그가 어떤 일들을 추진했던 걸까요? 그리고 불과 30대 후반의 나이로 ..

다이나믹 조선사, 연산군과 사화 이야기

저는 "긴장감"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고려에 비한다면, 조선은 좀 더 안정적인 분위기로 흘러가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요. 때로는 피바람이 불어닥치는 권력투쟁의 참혹한 모습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무려 네 차례나 있었던 "사화"였지요. 간단히 사림 세력들이 화를 당했다 라고 요약할 수 있는데, 대체 이들은 왜 심한 화를 입었는지, 구체적인 장면들을 살펴보면서 오늘은 즐겁게 문서를 정리할까 합니다. 조선시대는 15세기까지 훈구파가 주도세력이었고, 16세기 이후부터는 거의 400년간을 사림에서 주도하게 됩니다. 뭐, 사림도 나중에는 서로 의견이 맞는 사람들끼리 당을 형성하고, 붕당정치를 해나가지만요. 어쨌든 오늘의 주요장면들은 사림의 성장기 입니다. 훈구파를 공격하면서 떠오르기..

조선의 군사 제도와 관리 등용 제도

오늘도 후다닥 문서를 정리해서 옮겨놓습니다 :) 마음을 비우고, 명경지수의 맑은 자세로... 조선의 군사 제도는 원칙부터 봐야겠지요. 조선 군역의 기본 원칙은 의무병이라 할 수 있는 "양인개병" 이 있습니다. 즉 양인들은 모두 병사가 된다는 말이지요. 따라서 노비처럼 천민들의 경우에는 군역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노비야 언제나 재산으로 다루어지기 마련이니까요. 자, 그렇다면 양인이면 모두가 병사인가? 라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양인은 크게 사, 농, 공, 상으로 구분되는데요. 먼저 사, 그러니까 선비들 중에서는 현역 관리와 공부하는 유생은 군역의 의무를 지지 않습니다. 살짝 특권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다르게 본다면 이들은 국가에 대한 일을 이미 하고 있으므로, 이중부담을 지우지 않는다는..

조선의 행정조직 -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하나씩!

편안한 마음으로 조선의 행정조직들을 살펴봅시다. 조선의 관료들은, 중앙을 담당하는 경관직과, 지방을 담당하는 외관직으로 나눠서 살펴보는게 편하겠지요. 먼저 중앙의 경관직은 의정부와 6조, 그리고 3사, 그 외 몇가지 기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의정부에는 3정승이 존재하고요, 이들은 지금의 수상이나 국무총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6조는 실무를 담당하는 곳이라 할 수 있으며, 각각 이,호,예,병,형,공조가 있습니다. 지난 문서에서 잠시 살펴보았지만, 의정부 서사제로 가느냐 6조 직계제로 가느냐는 살짝 차이점이 있습니다. 서사제는 신하의 동의를 받고서 일을 처리해 가느냐 이고, 직계제는 곧바로 실무팀에 직접 지시를 내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3사에는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이 있습니다. 이들은 언..

조선 체제 안정 과정 - 유교적 법치 국가를 향하여

새로운 나라가 세워졌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법과 제도가 완성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안정화 되는 과정을 살펴볼 시간입니다. 조선은 태조 이성계에 의해서 건국되었다지만, 어디까지나 태조는 무인 출신이고, 칼잡이 아니겠어요. 조선의 밑그림은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정도전이 다 그려놓습니다. 대체 무슨 일들을 했을까요? 정도전이 꿈꾸던 조선의 스케치를 따라가 봅시다. 조선경국전(법전), 경제문갑을 통해서 통치질서를 정해나갑니다. 또한 불씨잡변을 주장하면서, 강력하게 불교를 비판합니다. 정도전은 어디까지나 재상중심의 정치질서를 지향했으며, 민본적 통치 규범을 꿈꾸던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잠깐 장문 여담으로, 정도전은 취중에 이런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중국 한나라 건국에 빗대어 "한고조가 장자방 장량을 이용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