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조선의 군사 제도와 관리 등용 제도

시북(허지수) 2013. 5. 3. 16:03

 오늘도 후다닥 문서를 정리해서 옮겨놓습니다 :) 마음을 비우고, 명경지수의 맑은 자세로... 조선의 군사 제도는 원칙부터 봐야겠지요. 조선 군역의 기본 원칙은 의무병이라 할 수 있는 "양인개병" 이 있습니다. 즉 양인들은 모두 병사가 된다는 말이지요. 따라서 노비처럼 천민들의 경우에는 군역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노비야 언제나 재산으로 다루어지기 마련이니까요.

 

 자, 그렇다면 양인이면 모두가 병사인가? 라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양인은 크게 사, 농, 공, 상으로 구분되는데요. 먼저 사, 그러니까 선비들 중에서는 현역 관리와 공부하는 유생은 군역의 의무를 지지 않습니다. 살짝 특권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다르게 본다면 이들은 국가에 대한 일을 이미 하고 있으므로, 이중부담을 지우지 않는다는 측면이 강합니다. 한편 관리가 아닌 그냥 선비의 경우는, 특수군으로 빼주기도 했고요.

 

 뭐, 실제로 군역을 담당하면서 "정군"이라 불리던 이들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형편상 직접 군대를 갈 수 없는 경우는 보인이 되었는데, 이들은 정군을 경제적으로 도우면서, 군역에서 빠질 수 있었습니다. 사, 농은 대략 이런 분위기 였고요. 수공업자는 물품(혹은 군수품)을 생산하는 역할이었으므로, 군역이 제외되었고, 상인들은 세금을 납부함으로서 군역면제가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해 보이긴 합니다만, 실제로 조선의 다수는 농사 짓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충분히 "정군"병사는 많고, 튼튼했습니다. 면제받는 사람은 소수였고요. 따라서 정리하자면, 기본은 양인개병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농병일치의 원칙으로 운영 되고 있었습니다.

 

 군대조직은 중앙군과 지방군으로 나눠볼 수 있겠지요. 세 가지 키워드를 체크해둡시다. 5위, 영진군, 진관 체제. 아흑, 이게 다 뭔말인가 (?-_-?) 싶겠지만, 천천히 살펴봅시다. 중앙을 지키는 군대는 5위 라고 합니다. 정군, 특수군, 갑사(직업군)로 구성되어 있어서, 수도와 궁궐을 지켜줍니다. 지방은 영진군이 지킵니다. 조선도 마찬가지로 군사요충지가 있을테니, 이곳에다 진을 쳐서 튼튼하게 막아내는 모습입니다. 이런 말 들어보셨잖아요. "진을 쳐라~, 진을 구축하라~"

 

 한편 조선의 방어시스템을 두고서, 진관 체제 라고 부릅니다. 일종의 지역방어 개념이라고 보면 되는데, 적이 쳐들어오면, 각 진에서 독자적인 통제권을 사용할 수 있었고, 방위를 해나갑니다. 소규모 적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고요. 뭐 지방 군사요충지는 영진군이 진관 체제(지역방어)로 지켜 나갔는데, 재밌는 것은 내륙 지방입니다. 비교적 군사적 중요도가 낮았던 내륙 지방은 잡색군이 지켰습니다. 이들은 향리와 노비까지 포함되어 있는 비정규군이었고, 거의 기능하지도 못했습니다. 다소 예비군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었는데, 무늬만 군인이지, 실제로는 흔히 야유되는 "잡졸"도 되지 못했지요.

 

 이제 관리 선출 방식을 살펴봐야겠지요. 조선시대 하면, 유명한 장면이 떠오르잖아요. 바로 과거시험입니다. 조선은 정말 과거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과거는 문과, 무과, 잡과로 나누어져 있었고요. 문과와 무과는 소수만을 뽑았기에 통과도 쉽지 않았습니다. 각도에서 인구수에 맞춰 초시를 쳤고, 이후 복시를 쳐서 33명을 확정합니다. 그리고 전시를 통해 서열을 나누었고요. 실력을 쌓아서 출세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말처럼 쉬운 일이 절대 아닙니다! 공부가 제일 쉬울 수야 있겠지만, 공부를 통해서 사회적 역할을 공인받기 까지란, 얼마나 험난한지... 하하;;;

 

 참, 문과의 경우 서얼과 재가여성(재혼)의 자녀는 응시불가 였다는 것도 조선의 주목할 점입니다. 서얼은 첩의 자식을 의미하고, 조선은 특히 재혼금기의 사회를 만들어 놓았지요. 사회적 차별이 있었다는 점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 강조되는 현대의 관점에서 조선을 보면, 특히 갑갑함이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 유명한 소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 중략!)

 

 한편 문과는 성균관 출신들이 많이 봅니다. 게다가 성균관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지요. 엄연히 소과라는 시험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소과에 통과하면 생원, 진사의 이름을 얻기도 했고요. 제대로 나라일을 해보려면, 그 코스가 소과 합격 → 성균관 → 대과(문과) 급제 → 서경(심사) → 관직 → 지속적 근무 평가 → 높은 관직 이라는 험난한 길을 가야 했습니다. 요즘 말로 의역해 본다면, 수능 대박은 겨우 소과 합격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생은 길고, 리더의 자리는 멉니다. 계속해서 정진해야만 관료제의 꼭대기를 향해갈 수 있다랄까요. 그러고보면, 쉬운 게 없다니까요.

 

 아 물론 과거만 있는 건 아닙니다. 실력을 중시하는 조선 사회였지만, 나름대로 "줄(?)이나 추천"을 타고 관직에 오를 수 있기도 합니다. 조선에도 문음이라고 해서, 2품이상 관료의 줄로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는데, 고위직에 올라갈 수는 없습니다. 고려의 음서제와는 상당히 모습이 다르지요. 제대로 관직을 해보려면 과거에 급제해야 돼! 입니다. 현량과 라고 해서, 현직 관리의 천거를 통해서도 관직에 진출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취재 라고 해서 간단한 시험을 통해, 하급실무직을 뽑기도 했습니다. 사실 3년마다 실행하는 소과나 대과(문과)로만 모든 관료를 뽑을 수는 없었을테고, 말단의 경우는 이렇게 다양한 방법들로 조금씩 인원을 보충했다 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오늘의 영감 - 박경철 샘의 책을 읽다가, 구원에 관해서 재밌는 통찰이 있어서 소개할까 합니다. 누군가 와서 구원의 다리를 놓아주었기에, 마침내 새로운 세계로 건너갔다고 칩시다. 그런데 이 경우 그 다리는 가짜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진짜 자유를 획득하지 못하고, 또 다른 굴종과 노예가 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말 중요한 것은 "누군가에게 기대어서 얻게 되는 구원" 이 아니라, "스스로가 각성되어서 실력을 쌓는 구원"이 진짜 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종교적 차원의 접근이라기 보다는, 생활의 자유를 얻는 접근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안일할 때가 많고, 기대고 싶을 때가 많고, 적당히 의지하면서 빌붙으려 하는 습성을 볼 때가 많습니다. 남의 덕에 기댄다거나, 과거의 성공에 취한다거나, 혹은 조직이나 군중심리 뒤에 숨어서 비겁한 모습이 될 때가 많습니다. 과연 이런 삶을 성공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과 스스로 완전한 경제적 독립을 이루기가 상당히 벅찬 사회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소비와 사치가 조장되고 있고, 심하게는 위선과 사기가 만연한게 아닐까 우려도 됩니다. 우리가 저마다 실력을 갖추어서, 온전한 독립체로 살아갈 수 있기를, 계속해서 정진하는 삶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삶, 새로운 세계, 차이를 만드는 것은 본디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다른 세상을 만들어 보려는 패기넘치는 이들이 있다면, 그 어려운 일을 향해서 나아갈 때, 무엇보다 열심을 잃지 않기를 오늘도 바랍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