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168

을미사변 - 조선의 국력이 다해가는 징조

러시아 중심으로 민씨 정권이 갈아타면서, 친일 박영효를 역적으로 축출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3차 김홍집 내각에서는 친러적 성향이 강해졌습니다. 러시아나 미국을 끌어들이면, 일본을 얼마든지 견제할 수 있겠구나 싶었던 거지요. 한편, 이와 반대로, 일본 입장에서는 조선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조선 정도야, 주무를 수 있다고 계산합니다. 사무라이 칼로 테러해 버리지 뭐... 1895년 10월 8일의 일입니다.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명성황후에 대하여, 일본이 테러를 시도합니다. 1895년 을미사변 입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이라고도 부르지요. 한 나라의 국모를 시해하고자, 낭인(일본무사)들이 들어와서, 고종이 있는 방으로 들이닥칩니다. "명성황후 어딨냐~?" 결국 일본 무사들은 좇아가서 궁녀들과..

갑오 2차개혁 및 삼국간섭 이야기

지난 문서의 복습부터! -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했습니다. 이후, 청일전쟁을 일으키는 일본! 그러면서,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하는데요. 이른바 "김홍집 내각"을 세웁니다. 한편 김홍집 이라는 사람은, 내각마다 꼬박꼬박 등장하고, 한 번도 빠지지 않아요! 여하튼, 군국기무처를 중심으로 해서, 갑오 1차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또한 동학도 탄압했고요. 그러고보니, 1894년에 있었던 일을 살펴 보는데, 벌써 문서 5개째군요. 하하. 그런데, 놀랍고 흥미롭게도, 청일전쟁에서 우세를 잡은 쪽은 일본이었습니다! 뭐, 일본이 강한 것도 있었지만, 사실상 영국에 의해서 계속 시달렸던 "청나라가 그만큼 약한 상태"라고 봐야겠지요. 외세의 강력한 압박 아래, 예전의 화려한 강국이 아닌 종이호랑이 청나라가 되고 말았으니까..

갑오개혁 - 신분제가 폐지되는 그 날이 오다!

지난 문서에 이어 계속되는 갑오 1차개혁 이야기 입니다. 지난 회를 잠깐 체크해 본다면, 정치 면에서는, 개국기년을 썼다는 것, 따라서, 청의 종주권을 부인하며, 자주적 모습이 있었다는 것 기억나는가요. 왕권이 약해지고 있고, 의정부 8아문 체제가 생각난다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경제면에서는 재정 일원화를 추구하며, 재정을 탁지아문에서 관리하도록 정했습니다. (*참, 오래 전, 갑신정변이나 또는 동학농민운동에서 주장했던 것은 실패로 끝나서, 직접적으로 실현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에 비해, 갑오개혁에서는 실제로 개혁안이 반포되고, 작동되었다는게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지난 세월 그렇게 간절했던 바람들이 갑오개혁을 통해서 드디어 여럿 실행되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경제면과 사회면에..

동학농민운동 3부 - 후일담, 군국기무처와 갑오개혁 추진

이번 문서는 상황에 대한 전체적인 복습과, 동학농민운동이 헛되지 않았음을 살펴볼까 합니다. 이른바, 공간과 시간을 생각해보는, 입체적인 이해를 감히 추구합니다! 하하. 곧바로 이야기 출발!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의 상황을 전라도 지역과 서울 지역으로 나뉘어서 접근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전라도에서 일어난 상황부터! 전라도 고부에서 촉발되었고, 이윽코 백산봉기에서 거세게 일어나며, 전주성을 점령! 이 비상사태를 맞이해, 이후, 청과 일본이 냅다 조선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다급해진 정부는 농민군과 전주화약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일본의 만행 (경복궁 점령 등) 에 맞서며 대대적인 2차 농민봉기가 시작되는데, 우금치 전투로 연결되었습니다. 길었던 지난 문서의 내용을 한 문단으로 압축한 것이지요..

동학농민운동 2부 - 백산봉기, 전주성을 점령하라!

지난 문서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그리하여, 본격적인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됩니다. 더욱 커진 제2차봉기 - 백산봉기가 일어납니다. 직접적 원인은 정부에서 내려온 안핵사 이용태 라는 인간이, 고부 봉기 주모자들을 역적죄인으로 내몰았기 때문입니다. 참, 조병갑이나 이용태 같은 학정의 대표주자들을 잘 파악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종종 시험에 단골 악당으로 등장해요. 나쁜 인간의 말로는, 죽어서도 욕을 무진장 얻어먹기 마련입니다. (덧붙여, 사람은 잘 변하지 않아서 이용태는 훗날 친일파로 변신하면서, 딱 자기 수준대로 살아갑니다. 친일파 명단에도 빠짐없이 이름을 올리는 이용태!) 이제부터 전개가 꽤 장엄해집니다. 백산봉기는 훨씬 본격적 입니다. 전주성을 점령하자!!! 동학교도 + 농민들이 대거 합세하였고, 전주성..

동학농민운동 1부 - 고부봉기, 조병갑을 처단하자!

긴 이야기에 앞서, 이번 문서에서 미리 밝혀두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제 역량에서 동학농민운동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확실히 무리수입니다. 저는 역사 전공자가 아니며, 조촐하게 반취미로, 즐겁게 정리를 해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개인마다 견해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양해해주시고, 제 성향상 약간은 농민군의 관점으로 기술하려 합니다. 덧붙여,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될 때가 많습니다. 뒤집어 말해, (이제는 어느 정도 알려져있지만) 프랑스 혁명 당시 "빵이 없다면 과자를 먹으면 되잖아요" 라고 망언을 했다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진실은, 거리에서 굶는 아이들에게 "저 아이들에게 브리오 슈(빵)를 주세요" 라고 말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려고 노력했던 왕비라고 합니다. 다만, 위..

갑신정변과 14개조 개혁안 이야기

우리는 너무 행동가들을 쉽게 바라보는게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게다가 실패까지 겹치면, 괜히 위로하는 말을 툭 던집니다. 거봐, 가만히 있었으면 차라리 나았을 걸... 그러나, 인간심리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사람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대부분 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고 합니다. 인생은 어차피 한 번 뿐이기에, 우리가 무엇을 해볼 것인가 생각해보고, 실제로 부딪혀 보는 것이 "멋진 삶"에 다가가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뭐, 그렇다고 제가 갑신정변을 굳이 띄워주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행동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조금 장문이 되겠지만, 끊지 않고, 긴 호흡으로 가볼까 합니다. 갑신정변의 현장으로 얼른 달려가봅시다. 조선은 임오군란(82)을 거치면서, 청나라가..

임오군란의 이해,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건 무엇인가?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의 문이 열렸습니다. 1880년 통리기무아문까지 설치해가며, 좀 더 잘 살자고 개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정작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누가 힘든가요. 곡물값이 오르면서 경제적으로는 어려워졌고, 군대 역시도 개편되면서 지금 5군영이 2영으로 축소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남아 있는 직업군인 2영에게는 잘 대해주었는가? 영 그렇지 않았습니다. 신식 별기군에게는 좋은 혜택을 제공하면서, 같은 군인인데도 구식군대에게는 일년 넘게 급료가 밀리기 시작했고, 이래저래 쌀값도 비싸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이 꼴이 대체 뭐냐? 도저히 살 수 없잖아! 구식군인들이 중심이 되어서, 1882년 임오군란이 발생 합니다. 일단 원인은 무엇일까요? 별기군과의 노골적 차별대우가 ..

통리기무아문 설치, 추진되는 개화 정책

1880년 조선은 개화를 추진하기 위하여, 개화전담기구를 설치하게 됩니다. 이것이 통리기무아문 입니다. 이 밑에 12개 부처를 두어서, 청나라 및 일본과의 교류를 해가며, 개화를 어떻게 추진할지 고민하고 실행해 나갑니다. 대략 1881년 즈음에, 대표적으로 추진된 것으로는, 첫째, 군사력 강화안이 있습니다. 외국을 갔다와보니, 조선 군대가 정말 대책 없어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신식 군대를 만들게 되는데, 이른바 "별기군"을 양성 합니다. 말하자면, 별난 기계(재주)를 갖고 있는 군대라는 뜻입니다. 실제로도 좀 별난 측면이 있었는데요. 별기군은 일본인 교관에 의해서 훈련 받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게다가 급료도 무척 빵빵하고, 옷도 멋지고~ 신식답게 꽤 근사한 군대입니다. 이러다보니, 기존에 있던 구식군..

개화파 vs 위정척사파의 분위기 파악하기

서론은 소박한 멘트로 엽니다. 인간의 삶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비교가 아닐까 합니다. 비교하는 순간 "다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비교우위나 열등감으로 해석하면서, 우리는 스스로 불행을 자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괜히 남과 비교하지 마세요! 그냥 묵묵히 길을 가세요! 어제의 나보다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면 충분한 거니까요! 일단 간단 복습부터 살짝 해볼까요. 10년 동안 정권을 잡았던 대원군이 물러나고, 민씨 정권이 들어서면서,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불평등 조약이었고, 그 대표적인게 치외법권과 해양측량권 문제가 들어가 있었다. 기억나지요! 오늘 문서는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자, 이제 이 강화도 조약을 어떻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