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20년 전에도 그런 생각을 어렴풋이 했었지만, 유시민 선생님은 참 글을 맛깔나게 잘 씁니다. 거꾸로 읽는 역사책이니, 경제 이야기니, 비교적 어린 나이에도 소화가 가능했을 만큼, 이해하기가 정말 쉬웠습니다. 초코파이를 예를 들면서, 처음에야 맛있지만, 세 개쯤 먹으면 그 효용가치가 폭락한다는 비유는 지금까지도 가끔 생각납니다. 오십대 중반이 되었음에도, 유 선생님은 더욱 솔직하게 표현합니다. "아무리 이름난 철학자라 해도 너무 어렵게 이야기하면 좋아하지 않는다." 저 역시도 스스로를 자학하도록 만드는 어려운 책이 싫었기에, 술술 쉽게 풀어쓰는 유 선생님들의 책이 참 좋았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신간도 여전히 읽기 편합니다. 첫 마디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는 노는 게 좋다." 여전히 철없는 유선생님, 그래서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론은 이 대목을 그대로 가져오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번 읽어보았는데, 이런 삶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게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 권리가 있다. 이제부터라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그 어떤 이념에도 얽매이지 않고, 내 마음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떳떳하게 그 권리를 행사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기쁘게 살고 싶다."
저자 : 유시민 / 출판사 : 아포리아
출간 : 2013년 03월 13일 / 가격 : 15,000원 / 페이지 : 344쪽
그런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기쁘게 살기 위해서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밥벌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다른 말로 경제적 독립이 중요합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유시민은 가차 없이 돌직구를 던집니다. "생계를 타인의 자비심에 의존하면 존엄한 삶을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쓸모있는 사람이 되려고 애썼고, 글쓰기로 밥을 먹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유시민은 폐 끼치지 말고 살기 위해서, 손 빌리는 삶을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어딜가나 민폐인 인생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경제적 독립을 이루어서 당당한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인생은 모르는 일, 어떤 순간에서도 극단적 포기를 하지 말고, 꾸준히 도전해 본다면 길은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합니다. 어디에 도전할 것인가? 유선생님은 대학 강연 때마다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핵심적인 이야기인데, 한 번 진득하게 생각해 볼만한 멋진 대목 입니다.
"스스로 설계한 삶이 아니면 행복할 수 없다. 그 자체가 자기에게 즐거운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 일을 적어도 남들만큼은 잘할 준비를 하라. 열정을 쏟고 싶은 일을 찾은 사람이라면 그 일을 잘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 역시 즐거울 것이다. 목표 없이 그저 막연히 스펙만 쌓으려고 한다면 잘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한다." 깔끔한 글에 굳이 잡문을 덧붙인다면, 자기가 직업을 직접 선택해야 합니다, 또한 잘 해낼 수 있도록 당연히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중요한 건, 그렇게 노력하는 과정 또한 즐거울 것이라는 점! 그 까닭은 인생을 내가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 점을 제대로 고민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사회의 눈, 부모님의 눈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선택하며 살 것인지, 그 키(해답)를 갖고 있는 사람은, 분명 행복해 질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단기적으로는 사회적 평판이나, 부모님과의 갈등이 있을지라도, 장기적으로는 분명 자신이 선택해서 길을 가는게 훨씬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선택을 타인의 손에 떠넘기지 말라! 그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한편, 상당한 고찰이 필요한 대목이 있었는데, 이른바 "어떻게 놀 것인가" 입니다. 우선 유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삶에는 선악이나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재단할 수 없는 것이 많다. 놀이가 그렇다." 유시민은 지나치지만 않게,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범위에서, 남에게 피해입히지 않는다면, "밝은 마음으로 당당하게 즐기는 게 좋다" 라고 근사하게 표현합니다. 근래에 당구와 낚시를 즐겨하고, 아들과는 한 번씩 바둑을 둔다는 유 선생님은 또한 만화책도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영화보기, 축구보기, 만화책보기 등 나름 다양한 분야로 노는 것에는 막강한데(!)... 정작 놀면서도 깔려 있는 부담감이 상당했습니다. 이제는 부담을 좀 벗어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좀 더 사실대로 쓰자면, "안 그래도 충분히 바쁜 일상인데, 편안하게 놀 때가 아니다" 라는 압박을 자주 받았습니다. 부담감으로 인해, 근래 신나게 놀았던 기억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래도록 생각해 보고 난 후, 묘하게도, 바쁜 척 그만하고, 그냥 밝게 놀고,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해나가는 삶이, 오히려 참 빛나 보이는구나! 싶었습니다. 특별한 재능을 타고나서, 무슨 한 분야의 전설적 대가가 될 것도 아닌데, 노는 것을 타부(금기)시 했던 게 아닌가 싶었고, 쓸데없이 자신을 과대포장하려는 그 뻔뻔한 욕망이 엿보여서 심히 부끄러웠습니다.
끝없이 의무감으로 살기 보다는, 적절하게 타협하고, 열심히 인간의 도리를 다 했다면, 나가서 적당히 노는 것, 보통 사람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대목에선, 마음 한 켠에 여유가 생기는 느낌이었습니다. 결코 무작정 놀아라는 것도 아니었고, 충분히 도리를 다 했으면 놀 땐 놀자 라는 그 여유가 굉장히 탐스러웠던 순간입니다. 그래서 참 많은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노는 게 죄악이라면, 결국 누구를 위한 삶인지 되받아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인간은 시스템의 톱니바퀴가 되어 끊임없이 돌아가기 위해서 사는 존재가 결코 아니니까요.
쓸모 있는 글쟁이로 남기 위해서, "끊임없이 읽고, 배우고, 느끼고, 생각하고 써야 한다"는 유 선생님의 주장에 저는 대단히 공감합니다. 단순히 말해, 좋은 글은 저절로 써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딘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중요하며, 많은 노력을 요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실력을 갖춘다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망상으로 도피하며, 현실을 외면해서는, 온전히 인간답게 살아가기 곤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먼저 괜찮은 사람이 되어서, 놀고 일하며, 또 사랑하고 연대하며 살아간다면, 참 멋진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극단적인 지점을 바라는 게 아니라, 다만 주어진 환경 앞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을 하고, 노력하고, 또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는게 어쩌면 인간다움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면, 떳떳하게 놀아도 괜찮아.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뽑아내기 보다는, 중간 중간 충전하면서, 자가 발전으로 생생하게 살아가는 것. 그렇게 매일 기쁘게 살고 싶다는 희망이 강렬하게 들었네요. 중년의 유선생님 고맙습니다. / 2013. 10.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