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문서에서 계속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예송 논쟁이라 함은, 예법과 관련된 논쟁인데요. 서인과 남인의 견해가 달랐습니다. 이전까지는 나름대로 살아남은 두 당이 "공존의 토대"를 유지해 왔다면, 결정적인 두 차례의 예송 논쟁 이후로는,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싸움이 격해져 갔고, 급기야 나중에는 한 쪽이 독식하는 "일당 전제화"로 흘러가는 씁쓸한 모습으로 진행됩니다. 대체 예송 논쟁이 뭐였는가, 자세히 들여다 봅니다. 우선 1차 예송 논쟁부터 천천히 파악할까요. 인조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어요. 첫째는, 소현세자이고, 둘째는, 봉림대군 입니다. 그리고 인조 시기에 조선 최대의 굴욕 중 하나인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게 대패하며 항복선언" 을 하잖아요. 왕자도 청나라로 끌려가고요. 이래저래 비참했습니다.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