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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과 국내 정세 4부 - 좌우 합작 운동의 실패, 그리고 유엔으로.

이승만의 정읍발언까지 살펴봤었지요. 그에 대한 대응으로 좌우 합작 운동이 전개됩니다. 자, 여기서 이 운동을 이끌었던 세력들은 당연히 극우나, 극좌가 아니었습니다.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세력들이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중도 좌로는 여운형, 중도 우로는 김규식이 있습니다. 극한적인 좌우 대립을 이제 멈추고, 우리가 하나가 되어서 새로운 정부 수립에 앞장서야 한다, 극심한 혼란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 것입니다. 이 운동이 성공적으로 출발할 수 있었던 배경은 미군정이 초기에 좌우 합작 운동을 지지하거든요. 왜 미군정이 좌우 합작을 지지 했을까요? 나중에 미군정은 이승만 중심의 대한민국 수립을 도와주지 않나요? 라고 질문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왜 이승만 대신에 여운형 김규식을 지지했던 걸까요..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으니(누가2:8-20)/홍종일목사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으니 (누가2:8-20) 이번주는 성탄주일입니다. 실제로는 이번주 목요일이 성탄절입니다. 그래서 1절에서 7절까지는 그때를 위하여 생략하고 오늘은 8절부터 살펴봅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가 기사를 보니까 명동의 상점주인들이 성탄절 대목이 실종되었다고 울상이라는 기사가 나왔고요 성탄트리니 캐롤이니 하는것도 예전에 비해서 안팔린다는 이야기를 하는 기사가 같이 나왔습니다. 뒤를 이어 사람들이 지갑을 닫았다 하는 이야기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사실 성탄절은 흥청망청하는 그런 날은 아닙니다. 성탄절은 오히려 우리에게 절약과 이웃사랑을 가르치는 날입니다. 우리를 위해서는 절약하고 그 남은 것으로 남을 생각하는 그런 날입니다. 왜냐면 우리 주님의 나심과 주님의 성탄을 기뻐한 사람들이 낮은 ..

정관누리교회 2014.12.21

광복과 국내 정세 3부 - 모스크바 3상 회의, 좌우의 대립

모스크바 3상 회의 (미국 소련 영국) 에서, 결정되는 것들이 무엇인지 잘 살펴보아요. 꼭 기억할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 한반도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겠다 라는 결정. 두 번째, 신탁 통치가 결정 됩니다. 신탁 통치를 하는 나라들로는 미국, 소련, 영국, 중국에 의한 신탁 통치라는 거였고요. 마지막으로, 미소 공동위원회를 개최하겠다는 거에요. 자, 그런데 모스크바 3상 회의의 소식들이 알려졌을 때 남한에서는 말이지요. 이 신탁통치에 대한 내용만이 부각되어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처음에는 국내에 있었던 좌익이나, 우익이나, 모두 다 신탁 통치에 대해서 반대하게 됩니다. 신탁 통치라고 한다면, 다른 나라가 대리로 다스리겠다는 거니까, 또 다른 식민지처럼 느껴졌다는 겁니다. 일제 강점기..

광복과 국내 정세 2부 - 카이로 선언, 얄타 회담

1945년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세계의 정세라고 할까요. 1940년이 되면 일제는 패망의 기운이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 보여지고 있어요. 전선이 중국과 미국까지 확대되고 있고, 전쟁은 끝나가고 있고, 그러면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들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 첫 번째 회의가 이집트 카이로 회의 (1943) 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독립이 최초로 언급됩니다. 그 다음에 얄타회담 (1945) 이라고 해서, 광복 직전에 열리는 회의에요. 여기에서는 소련이 2차대전에 참여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전쟁이 거의 끝나가는데 말이지요. 하하. 그런데 이게 왜 우리한테 영향을 미치는가 하니, 소련이 2차대전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곧, 38도선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단 말이지요. 왜냐..

광복과 국내 정세 1부 - 큰 그림에서 이해해 보기

현대사는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어요. 일단 이 문서는 교과서 위주로 가겠습니다. 이 점을 미리 언급해두고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이제 개항기, 일제강점기에 이어서, 현대사를 배우게 될텐데요. 대한민국의 수립으로 들어가기 전에, 세계사를 어느 정도 포함한 현대사의 큰 틀부터 접근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대사에서 세계사적인 큰 구분으로 냉전이 있습니다. 콜드워 라고 하지요. 미국과 소련의 체제경쟁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냉전의 흐름이 어떻게 전개되느냐 하면, 냉전이 절정에 이르러가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푹 하고 꺼지지요. 각각의 포인트를 보면 1945년에서 출발해 1947년에 트루먼 독트린이라는게 나와요. 독트린이라는 것은 선언이라고 보시면 되고요. 냉전의 절정은 1969년도입니..

민족문화 수호운동 3부 - 식민사관과 그 저항

일제 강점기 마지막 문서입니다. 소박하게 시작한 일이 여기까지 올 수 있다니 우선 기쁜 일입니다. 장기 프로젝트를 재밌게 봐주신 분들께는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이번 문서에서는 먼저 연극과 영화를 살펴보려해요. 개항기에서 꼭 기억할 것은 다시 언급하지만 원각사 입니다. 은세계라는 신소설을 처음으로 올리더라 라는 것 기억해 두시면 됩니다. 1910년대의 연극으로는 신파극이 있습니다. 그리고 1920년대 중요한 작품 나운규의 아리랑 (1926) 이라는 작품입니다. 이를테면, 신파극이 주로 3류소설처럼 남녀간의 사랑을 주로 다루었다면, 아리랑은 놀랍게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항일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겁니다. 사람들에게 놀라운 문화적 충격을 주었지요. 줄거리를 보면요, 영진이라는 주인공이 3.1 운동에서 충..

공부 논쟁 리뷰

올해 하반기, 이 한 권만이라도! 라면서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두 번 정도 정독해 나갔습니다. 공부에 대한 독특한 관점이 그만큼 반가웠고, 기뻤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흔히 볼 수 있는 고민들, "나는 과연 할 수 있을까?" 앞에서 저자는 가차없이 "전력질주 해봐" 라고 조언합니다. 1년간 뛰어봐야 비로소 자신에 대해서 알 수 있다는 것이에요. 형제는 사실 거침이 없이 막 던지지만, 그 속에는 충분히 핵심을 꿰뚫는 예리함들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1등이 아니면 뭐 어때? 1등이 다른 것도 전부 잘할 것 같니, 그게 증명되었니? 1등 들이 자기들 편하게 구조화 해놓은 이 사회에 쫄지 마! 라고 박력 있게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 용감해 질 필요가 있습니다. 내 탓으로 계속 돌릴 필요도 없습니..

리뷰[Review]/책 2014.12.15

민족문화 수호운동 2부 - 카프문학과 저항문학

이번 문서도 술술 읽어내려 가시면 됩니다. 지난 번에 이어서, 문학은 크게 시와 소설로 나누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개항기 문학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신체시가 있습니다.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있네요. 신소설도 있었죠. 대표적으로는 은세계, 혈의누, 금수회의록 같은 작품이 있습니다. 아 여기서 중요한 대목 하나. 은세계 라는 신소설을 가지고 당시 원각사(1908)에서 공연에 올립니다. 원각사가 시험에 자주 나오는 편이라서요. 예컨대 원각사에서 연극을 보고 있는 신사 라고 한다면, 아 이거 구한말이구나 1905년 이후의 막판이구나! 라고 떠올라야 하겠죠. 그리고, 신체시나 신소설은 합쳐서 계몽문학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개항기에 있었던 문학들을 봤고, 1910년대 문학은 넘어가도록 합니다. 아 무단 ..

민족문화 수호운동 1부 - 조선교육령과 조선어학회

일제강점기의 문화파트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던 문학가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마음껏 하지 못했겠지요. 지식인들 역시 기껏 신문을 발행했음에도 잘려나가는 일도 많았고요. 검열이 있는 사회는 건강할 수 없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렇듯 문인들의 아픔들은 얼마나 컸을까 싶어요. 이번 문서부터는 교육, 문학, 역사 이런 식으로 나뉘어서 문화파트 접근을 해볼까 합니다.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으니까, 술술 읽어내려가시면 됩니다~ 복습부터, 먼저 개항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교육입국조서 (1895년) 입니다. 이것을 기준으로 해서 앞과 뒤의 학교들이 달라져요. 교육입국조서 앞 시기에는 최초의 근대학교 원산학사 있고요. 이화학당, 배재학당 (선교사중심) 존재하고 있습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들(마태복음2:1-12)/홍종일목사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들 (마태복음2:1-12) 이제 성탄절이 십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요즘은 솔직히 예전에 비해서 성탄절 분위기가 나지 않는 편입니다. 일단 길거리에서 들려오던 캐롤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습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리고 십년전에도 제가 설교할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점점 열기가 식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새벽송을 도는 교회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집들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제는 걸어서 가기가 곤란합니다. 물론 차로 가기도 어렵습니다. 새벽송을 부르러 차를 타고 다닌다...뭐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낯선 것 같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주차공간이 문젭니다. 차를 댈 곳이 없습니다. 이젠 새벽송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새벽녘에 잠결에 들려오던 고요..

정관누리교회 2014.12.14